정말이지,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간다. 정말이지 나가고 싶지 않지만 나가야하기에 나간다. 나는 직장인이다. 그것도 트렌드 세터 답게 88만원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종류의 회사원이다. 퇴근이 늦은 건 아니지만 풀타임으로 일하고 나면 당연히 진이 빠지고 그 순간 원하는 것은 오로지 달콤한 침대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은 땅을 밟으며 촛불집회에 간다. 축제... 좋다. 문화제, 퍼포먼스 다 좋다. 그렇지만 저변에 깔린 불편하고 억한 마음들이 종로바닥에 여기저기 쌓여있는 것이 이렇게 확실하게 보이는데 덮어놓고 축제라고 즐길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미안하지만 80년대 학번이 아니라서 [시위가 이정도면 정말 놀이터 버금가네.]라는 말, 와닿지 않는다.
그 흔한 등록금 투쟁조차 해보지 않아온 보신주의 아가씨에게 이런 위험하고 북적대고 진이 빠지는 집단행동을 '축제'라고 믿고 그저 즐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눈을 들면 방패를 든 푸른 옷의 청년들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그들을,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붉은 조끼를 입고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대는 젊은 여자와 어지러울 정도로 그와 비슷한 외양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일무리가 있다. 이게 유쾌한가? 아무리 가수가 와서 노래를 불러주고 달변가가 연설을 해주고 함께 입모아 노래를 부르면 뭐하나. 나와 그들과 우리는 [저항]을 위해 모였고 이 집회는 명실공히 적을 토벌하기 위한 행동의 일환이다. 대낮에 혼자 웃으며 촛불을 켜든 한밤중에 함께 고함지르며 촛불을 켜든 목적과 의식이 같은 이 두 행동은 모두 [저항]을 위한 행위이다. 이게 과연 축제인걸까?
종로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위에 눈물마냥 떨어져있는 촛농들 위엔 그보다 백배 천배 더 부피있고 뜨거운 사람들의 분노가 서려있다. 아수라로 변하는 동시에 적아의 구분 없이 폭력이 행해지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세종로 1번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지른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한 인간에 대한 비난과 독설을 수십만 인파가 동시에 해대는 곳에 귀를 열고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떤 이들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하자면 내가 약간 그런걸까. 대체 어쩌다가, 뭘 어떻게 했길래 이토록 진하고 뜨거운 네거티브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것일까. 이 쯤 되면 다른 의미로 그자가 미워지는 법이다. 그가 저지른 죄에 [사람들의 선량한 마음 위에 너 따위에 대한 분노를 심게 만들어놓은 죄]가 백중으로 추가된다.
하루 다르게 올라오는 포스트 들에는 집회자리에서 위트를 빚내는 시민들의 각종 창작물과 언행들이 기록되어있다. 물론 나도 유쾌하다. 서(鼠)생원에 빗대어 우스꽝스레 그려놓는 삽화들도 일품이고 굽히지 않는 당당함과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시민들의 전래 입담들도 이보다 통쾌할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낄낄대며 웃다가 노트북을 덮어버리는 순간 다시 우울해지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코미디에 웃어야 하는가. 왜 이런 저열한 일 하필이면 나의 시대에 터지며, 내 체력과 시간과 감성을 낭비하게 만드는가. 가급적이면 더 이상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지 않다.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 일하고 쉬고 즐기며 살고 싶다. 저항도 투쟁도 나와 인연이 없는 단어이기에, 그저 그렇게 필부로 열심히 살고 싶다.
헌데 그럴 수가 없다. 종로 바닥에 배출되는 분노와 독기가 불편하여 방관자를 자청한다면 그 뒤에 올 폭탄과 또 뒤이을 폭탄들이 무엇일지 자명히 알기에 그럴 수가 없다. 피곤하고 불편하고 무서워도 초도막을 휘저으며 즐기는 척, 괜찮은 척 함께 노래를 불러야한다. 가까운 어느 날에 또 촛불집회에 나갈 것이다.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아무렇지 않은 듯 흥얼흥얼 따라부르며 세종로를 휘젓고 다니겠지. 그리고 내가 못내 불편해하여 마주하기 싫어했던 '그'를 향한 분노를 그 세종로 바닥에 질질 흘리고 집에 돌아올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을 사람들에게 쓴웃음으로 사과를 대신하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간다. 정말이지 나가고 싶지 않지만 나가야하기에 나간다. 나는 직장인이다. 그것도 트렌드 세터 답게 88만원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종류의 회사원이다. 퇴근이 늦은 건 아니지만 풀타임으로 일하고 나면 당연히 진이 빠지고 그 순간 원하는 것은 오로지 달콤한 침대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은 땅을 밟으며 촛불집회에 간다. 축제... 좋다. 문화제, 퍼포먼스 다 좋다. 그렇지만 저변에 깔린 불편하고 억한 마음들이 종로바닥에 여기저기 쌓여있는 것이 이렇게 확실하게 보이는데 덮어놓고 축제라고 즐길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미안하지만 80년대 학번이 아니라서 [시위가 이정도면 정말 놀이터 버금가네.]라는 말, 와닿지 않는다.
그 흔한 등록금 투쟁조차 해보지 않아온 보신주의 아가씨에게 이런 위험하고 북적대고 진이 빠지는 집단행동을 '축제'라고 믿고 그저 즐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눈을 들면 방패를 든 푸른 옷의 청년들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그들을,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붉은 조끼를 입고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대는 젊은 여자와 어지러울 정도로 그와 비슷한 외양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일무리가 있다. 이게 유쾌한가? 아무리 가수가 와서 노래를 불러주고 달변가가 연설을 해주고 함께 입모아 노래를 부르면 뭐하나. 나와 그들과 우리는 [저항]을 위해 모였고 이 집회는 명실공히 적을 토벌하기 위한 행동의 일환이다. 대낮에 혼자 웃으며 촛불을 켜든 한밤중에 함께 고함지르며 촛불을 켜든 목적과 의식이 같은 이 두 행동은 모두 [저항]을 위한 행위이다. 이게 과연 축제인걸까?
종로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위에 눈물마냥 떨어져있는 촛농들 위엔 그보다 백배 천배 더 부피있고 뜨거운 사람들의 분노가 서려있다. 아수라로 변하는 동시에 적아의 구분 없이 폭력이 행해지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세종로 1번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지른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한 인간에 대한 비난과 독설을 수십만 인파가 동시에 해대는 곳에 귀를 열고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떤 이들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하자면 내가 약간 그런걸까. 대체 어쩌다가, 뭘 어떻게 했길래 이토록 진하고 뜨거운 네거티브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것일까. 이 쯤 되면 다른 의미로 그자가 미워지는 법이다. 그가 저지른 죄에 [사람들의 선량한 마음 위에 너 따위에 대한 분노를 심게 만들어놓은 죄]가 백중으로 추가된다.
하루 다르게 올라오는 포스트 들에는 집회자리에서 위트를 빚내는 시민들의 각종 창작물과 언행들이 기록되어있다. 물론 나도 유쾌하다. 서(鼠)생원에 빗대어 우스꽝스레 그려놓는 삽화들도 일품이고 굽히지 않는 당당함과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시민들의 전래 입담들도 이보다 통쾌할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낄낄대며 웃다가 노트북을 덮어버리는 순간 다시 우울해지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코미디에 웃어야 하는가. 왜 이런 저열한 일 하필이면 나의 시대에 터지며, 내 체력과 시간과 감성을 낭비하게 만드는가. 가급적이면 더 이상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지 않다.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 일하고 쉬고 즐기며 살고 싶다. 저항도 투쟁도 나와 인연이 없는 단어이기에, 그저 그렇게 필부로 열심히 살고 싶다.
헌데 그럴 수가 없다. 종로 바닥에 배출되는 분노와 독기가 불편하여 방관자를 자청한다면 그 뒤에 올 폭탄과 또 뒤이을 폭탄들이 무엇일지 자명히 알기에 그럴 수가 없다. 피곤하고 불편하고 무서워도 초도막을 휘저으며 즐기는 척, 괜찮은 척 함께 노래를 불러야한다. 가까운 어느 날에 또 촛불집회에 나갈 것이다.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아무렇지 않은 듯 흥얼흥얼 따라부르며 세종로를 휘젓고 다니겠지. 그리고 내가 못내 불편해하여 마주하기 싫어했던 '그'를 향한 분노를 그 세종로 바닥에 질질 흘리고 집에 돌아올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을 사람들에게 쓴웃음으로 사과를 대신하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