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짓하는 진성고(재단)의 협박성 댓글과 해명~까고 있네~
난 진성고 출신은 아니지만, 비슷한 환경의 학교를 다녔다. 영화배우 김수로가 항상 어린시절을 회상할 때 등장하는 학교가 바로 거기다.; 경기도 안성시의 A고. 간단히 정리해 동영상에 나와있는 진성고와 다른 점이 있다면
1. 재단이 일반 법인이 아닌 종교 재단 법인이다. A고등학교는 수원교구 내의 재단법인 산하 고등학교다. 때문에 현 교장선생님은 오랫동안 해당 지역 성당의 주임신부를 하셨던 신부님께서 역임 중. 진성처럼 신흥 사립고가 아니라 개교한지 80년쯤 된 오래된 학교다.
2. 학군이 학군인지라 진성고만큼 성적이 좋지 않다. 아마 우리 때(03학번) 서울대 히트 친게 8명인가 할걸. 학급은 학년당 8학급이다. 주로 오는 학생들은 이천, 안성, 평택, 용인, 여주, 광주 등이다.
3. 기숙사가 그렇게 무시무시하진 않다. 보통 8-10명 정도가 한 방을 쓰는데, 진성고 못지 않게 좁긴 하다. 하지만 일부 여학생들(제비뽑기로 정해짐)은 사감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식사(집밥보다 맛있다더라;)를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기숙사 신축을 해서 일괄적으로 10인 1실 배정을 받고, 일괄적인 복지혜택(PC실, 급식 등)을 받고 있다고 한다.
4. 아무래도 빡빡하게 짜인 관료제 종교 재단인지라 착복 비리는 확실히 덜하다. (100% 없다고는 장담 못한다만;) 체육복 등은 관 내 어느 체육사에 가도 판다. 뻥튀기된 가격의 면티 따위도 살 필요 없다. 급식 형편없기야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정도로 양심없는 가격은 아니다.
이정도 된다.
반면, 같은 점이 있다면
1. 진성에서 '야담'이라고 칭해지던 야간관리교사 대신에 야간 담당 교직원이 있다. 이 분들은 재단의 소속 교사가 아닌 행정실 소속의 계약직 교직원이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진 않고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 기숙사감 역시 이들과 같이 행정실 소속의 직원이며, 역시 사감님이라고 칭해진다.
2. 교칙이 놀랄만큼 비슷하다;. 정상적인 인문계 고등학교이니 음주-흡연-폭력의 삼신기는 당연히 금지된다. 입학 초 새터에서 나누어주는 교칙 수첩에는 무려 '부정한 남녀관계를 금한다.'라는 쇼킹한 교칙도 있다. 그때 받은 컬쳐쇼크란...; 두발은 진성보다 2cm 선심 써서 귀 밑 7cm까지다. 주말 자습을 나올 때 사복이 허용되지만 치마는 금지고 교복에는 남녀 모두 구두를 신어야 한다. 핸드폰 압수 규정도 비슷하지만, 기숙사 내에서는 가능 했던 듯 하다. 소지품 검사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3. 진성과 마찬가지로 과거 남학교였던지라, 2-3년 전 까지만해도 남자 선생님이 80%였다. 내가 딱 10년째 여자 입학생인데 여고에서 배우는 가정과목 등은 없었다. 교문 앞에서와 조례 때의 거수 경례도 마찬가지. 우리의 경례 구호는 [성실!]이었다. ...관내 타학교 학생들이 참 많이도 놀렸다-_-;
4. 24시간 학생들이 관리된다. 보통 7시 30분에 등교해서 5시 30분까지 수업을 듣고 6시 20분까지 저녁식사를 한 뒤 12시까지 자율학습을 해야한다. 독서실이 따로 있는데, 좋은 자리 50석은 상위 50명에게 주어지곤 했다. 지금은 전부 새로 들여와 전체적으로 관리를 한다더라.
이정도 일까나.
같은 듯도 하고, 다른 듯도 한 이 두 학교를 두고 우리 사촌 동기들은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 품에서 편히 다녀야 한다는 원칙 아래 다른 기숙학교를 물리고 A고등학교에 오게 되었다.(우리 집은 학교로부터 200m가량 떨어져있었기에.) 그 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뭔가 역적모의(?)를 할 때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웹이었다. 나도 그런 쪽으로 노는 것을 좋아해 학교애서 폐쇄시킨 자유게시판의 url을 찾아다 장난도 치고, 친구와 함께 미러 사이트도 만들곤 했다. 웹진을 만들기 위해 학교에서 몰래 비밀조직도 만들었고. 그때마다 내게 철퇴를 내린 사람은 학생회다. 우리학교의 회장선거는 전 임원과 각 학급 반장들만의 간접선거였다. 또한 천주교 신자가 강력한 지지를 얻곤 했다. 말 그대로 어용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회였다. 하지만 내가 했던 일들은 반항이라기보다는 즐겁게 노는 장난에 가까웠기에 크게 야단을 맞진 않았다.
내가 학교 다니면서 크게 충격을 받을 정도로 큰 일이 일어난 적은 없지만, 그 중에 가장 쇼킹했던 일은 두발자율화 서명운동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동조를 그닥 얻지도 못했거니와, 만인의 적이었던 어용 학생회장 덕분에 금방 사그러들게 되었다. 그 운동을 주도했던 언니는 정말 우리 일가를 바득바득 미워했다.(이제와서 말인데 우리 오라버니는 당시 회장이고, 사촌언니는 당시 선도부장이었다. 완벽한 어용 형제단이다;)
그 다음으로 충격적인 사건은 학내 개신교 학생들의 종교권리 찾기 운동이었다. 천주교 학교였기에 매주 토요일 미사가 있었고 학생들은 일년 중 최소 3-4회는 의무적으로 미사참례를 해야했다.(입학미사, 졸업미사 포함) 나야 집안 전체가 가톨릭이니 편하고 좋았다. 게다가 교양과목으로 종교가 주1시간 편성되었고, 심지어 견진성사 교리도 학교 내에서 이루어졌으니.아마 우리학교는 대한민국에서 몇 안되는 개신교 신자 탄압지대였던 것 같다; 결국엔 종교개혁(?)이 일어나 개신교 학생들의 비밀조직인 모 동아리가 공공연히 활동하게 되고 주말에 예배를 볼 수 있는 약간의 시간도 주어졌다. 역시나 지금은 어찌된지는 모르지만^^;
그 밖에 수능 직후 이루어지는 교과서 사형식이라던가, 일년 중 유일하게 음악을 팡팡 틀어놓을 수 있는 날인 교내 물청소 Day등등. 내가 이런 소소한 사건들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선-후배들 모두 단합하여 커다란 움직임을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누군가는 과감히 들고 일어섰지만 동조자는 언제나 적었다. 그것이 악순환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요지부동으로 조용히 살아온 데엔 이유가 있었다.
첫 번 째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선택한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내 고향은 어디까지나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적으나마 선택지는 항상 있었다. 실업계에서 종합고등학교로 전환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역의 신흥 사립고에서는 장학금과 소수정예를 무기로 학생들을 스카우트 하려 했고, 이렇게 기가 센 사립고들이 싫은 학생은 고장의 이름을 딴 공립 여고에 진학했다. 혹은 다른 지역의 기숙학교(주변엔 개신교 기숙학교도 몇 있었다.)도 있었고, 이도 저도 아닐 경우 지역 내에 대안학교 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하물며 타지역의 학생들이 꼬물꼬물 몰려드는 이 학교에서 그 선택을 뒤집어 엎고 모험을 할만한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대입을 이유로, 거리상의 이유로, 혹은 종교를 이유로 우리 학교를 택한 사람들은 꽤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애들은 나름대로 본인의 선택에서 최선을 다하려 했던 것은 아닐지.
두 번 째로, 사립학교이긴 하지만 학비는 공립과 비슷했던 우리학교는 진성고처럼 돈이 많이 드는 학교가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도 형편이 어려웠던 학생들은 상당히 많았고, 대부분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 핸드폰이나 액세서리 같은 것을 챙길 여유가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애초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두발 자율화나 복장 완화 등에 신경을 쓸 틈이 없던 것이다. 소지품 검사를 해봤자 담배를 피울 돈도 없는 아이들이 허다한데- 화장품을 살 돈이 없는 애들이 허다한데- 그런 쪽의 문제가 일어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증거로, 우리학교의 국립대학교 진학률은 사립대 진학률에 맞먹는다. 특히 충남대와 충북대는 사랑받는 학교이다.
세 번 째로, 우리는 주제에 성적지향주의로 똘똘 뭉쳐있었다. 말하자면 [수능이 100일 남았는데, 지금 두발자율같은 소리가 나옵니까.]정도랄까.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애들이 대체 왜 그랬을까?-_-; 사실 이건 지방 학생들의 억한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비평준화에 연합고사에 배치고사를 봐봤자 어차피 서울 시내의 평준화 고등학교에 가느니만 못한 것이 우리의 실력이다. 거기에 변변한 과외선생님이나 학원도 없는데 하루 중 18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일이라도 해야 따라잡을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던 듯 하다. 지금도 동문들은 우리가 인터넷 강의로만 간신히 듣던 메*스터디나 비*에듀 등등을 대치동과 노량진에서 라이브로 들은 서울 아이들을 보면 신기해 한다.
이 쯤 되어 다시 말하는데, 나는 당시 뿌리깊은 어용 일가의 유일한 말썽쟁이였다. 그러나 단지 장난이었을 뿐, 본격적인 항쟁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내 그릇은 거기 까지였고, 내 열정은 거기 까지 였으니까. 당시엔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백안시한 경향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동영상을 만들어 돌린 학생의 용기에 감탄하고 행동력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역시나, 그런 운동이나 액션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졌을 때 나오는 결과라는 생각엔 변함 없다. 그런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우민이라고 칭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노코멘트. 누구나 본인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또한 착복비리라던가 야간담임 등 진성고 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았던 A고등학교의 실정이었기에 터닝포인트가 넘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닷 하다. 혹시나 해서 네이버 등지를 검색해보니, 진성고 동영상 같은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무리한 야자와 갖은 구습에 대한 항변은 여기저기 보이지만-_-;) 나는 그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건대, 십대 때 본인들이 했던 그 행동을 후일에 부끄러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 시절의 내 장난 투성이 말썽들을 생각하면 나는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지하게, 사려깊게 행동해야 한다는것. 그것만 갖춰져 있으면 행동해도 될것이다. 그대들은 젊으니까.
난 진성고 출신은 아니지만, 비슷한 환경의 학교를 다녔다. 영화배우 김수로가 항상 어린시절을 회상할 때 등장하는 학교가 바로 거기다.; 경기도 안성시의 A고. 간단히 정리해 동영상에 나와있는 진성고와 다른 점이 있다면
1. 재단이 일반 법인이 아닌 종교 재단 법인이다. A고등학교는 수원교구 내의 재단법인 산하 고등학교다. 때문에 현 교장선생님은 오랫동안 해당 지역 성당의 주임신부를 하셨던 신부님께서 역임 중. 진성처럼 신흥 사립고가 아니라 개교한지 80년쯤 된 오래된 학교다.
2. 학군이 학군인지라 진성고만큼 성적이 좋지 않다. 아마 우리 때(03학번) 서울대 히트 친게 8명인가 할걸. 학급은 학년당 8학급이다. 주로 오는 학생들은 이천, 안성, 평택, 용인, 여주, 광주 등이다.
3. 기숙사가 그렇게 무시무시하진 않다. 보통 8-10명 정도가 한 방을 쓰는데, 진성고 못지 않게 좁긴 하다. 하지만 일부 여학생들(제비뽑기로 정해짐)은 사감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식사(집밥보다 맛있다더라;)를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기숙사 신축을 해서 일괄적으로 10인 1실 배정을 받고, 일괄적인 복지혜택(PC실, 급식 등)을 받고 있다고 한다.
4. 아무래도 빡빡하게 짜인 관료제 종교 재단인지라 착복 비리는 확실히 덜하다. (100% 없다고는 장담 못한다만;) 체육복 등은 관 내 어느 체육사에 가도 판다. 뻥튀기된 가격의 면티 따위도 살 필요 없다. 급식 형편없기야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정도로 양심없는 가격은 아니다.
이정도 된다.
반면, 같은 점이 있다면
1. 진성에서 '야담'이라고 칭해지던 야간관리교사 대신에 야간 담당 교직원이 있다. 이 분들은 재단의 소속 교사가 아닌 행정실 소속의 계약직 교직원이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진 않고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 기숙사감 역시 이들과 같이 행정실 소속의 직원이며, 역시 사감님이라고 칭해진다.
2. 교칙이 놀랄만큼 비슷하다;. 정상적인 인문계 고등학교이니 음주-흡연-폭력의 삼신기는 당연히 금지된다. 입학 초 새터에서 나누어주는 교칙 수첩에는 무려 '부정한 남녀관계를 금한다.'라는 쇼킹한 교칙도 있다. 그때 받은 컬쳐쇼크란...; 두발은 진성보다 2cm 선심 써서 귀 밑 7cm까지다. 주말 자습을 나올 때 사복이 허용되지만 치마는 금지고 교복에는 남녀 모두 구두를 신어야 한다. 핸드폰 압수 규정도 비슷하지만, 기숙사 내에서는 가능 했던 듯 하다. 소지품 검사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3. 진성과 마찬가지로 과거 남학교였던지라, 2-3년 전 까지만해도 남자 선생님이 80%였다. 내가 딱 10년째 여자 입학생인데 여고에서 배우는 가정과목 등은 없었다. 교문 앞에서와 조례 때의 거수 경례도 마찬가지. 우리의 경례 구호는 [성실!]이었다. ...관내 타학교 학생들이 참 많이도 놀렸다-_-;
4. 24시간 학생들이 관리된다. 보통 7시 30분에 등교해서 5시 30분까지 수업을 듣고 6시 20분까지 저녁식사를 한 뒤 12시까지 자율학습을 해야한다. 독서실이 따로 있는데, 좋은 자리 50석은 상위 50명에게 주어지곤 했다. 지금은 전부 새로 들여와 전체적으로 관리를 한다더라.
이정도 일까나.
같은 듯도 하고, 다른 듯도 한 이 두 학교를 두고 우리 사촌 동기들은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 품에서 편히 다녀야 한다는 원칙 아래 다른 기숙학교를 물리고 A고등학교에 오게 되었다.(우리 집은 학교로부터 200m가량 떨어져있었기에.) 그 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뭔가 역적모의(?)를 할 때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웹이었다. 나도 그런 쪽으로 노는 것을 좋아해 학교애서 폐쇄시킨 자유게시판의 url을 찾아다 장난도 치고, 친구와 함께 미러 사이트도 만들곤 했다. 웹진을 만들기 위해 학교에서 몰래 비밀조직도 만들었고. 그때마다 내게 철퇴를 내린 사람은 학생회다. 우리학교의 회장선거는 전 임원과 각 학급 반장들만의 간접선거였다. 또한 천주교 신자가 강력한 지지를 얻곤 했다. 말 그대로 어용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회였다. 하지만 내가 했던 일들은 반항이라기보다는 즐겁게 노는 장난에 가까웠기에 크게 야단을 맞진 않았다.
내가 학교 다니면서 크게 충격을 받을 정도로 큰 일이 일어난 적은 없지만, 그 중에 가장 쇼킹했던 일은 두발자율화 서명운동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동조를 그닥 얻지도 못했거니와, 만인의 적이었던 어용 학생회장 덕분에 금방 사그러들게 되었다. 그 운동을 주도했던 언니는 정말 우리 일가를 바득바득 미워했다.(
그 다음으로 충격적인 사건은 학내 개신교 학생들의 종교권리 찾기 운동이었다. 천주교 학교였기에 매주 토요일 미사가 있었고 학생들은 일년 중 최소 3-4회는 의무적으로 미사참례를 해야했다.(입학미사, 졸업미사 포함) 나야 집안 전체가 가톨릭이니 편하고 좋았다. 게다가 교양과목으로 종교가 주1시간 편성되었고, 심지어 견진성사 교리도 학교 내에서 이루어졌으니.
그 밖에 수능 직후 이루어지는 교과서 사형식이라던가, 일년 중 유일하게 음악을 팡팡 틀어놓을 수 있는 날인 교내 물청소 Day등등. 내가 이런 소소한 사건들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선-후배들 모두 단합하여 커다란 움직임을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누군가는 과감히 들고 일어섰지만 동조자는 언제나 적었다. 그것이 악순환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요지부동으로 조용히 살아온 데엔 이유가 있었다.
첫 번 째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선택한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내 고향은 어디까지나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적으나마 선택지는 항상 있었다. 실업계에서 종합고등학교로 전환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역의 신흥 사립고에서는 장학금과 소수정예를 무기로 학생들을 스카우트 하려 했고, 이렇게 기가 센 사립고들이 싫은 학생은 고장의 이름을 딴 공립 여고에 진학했다. 혹은 다른 지역의 기숙학교(주변엔 개신교 기숙학교도 몇 있었다.)도 있었고, 이도 저도 아닐 경우 지역 내에 대안학교 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하물며 타지역의 학생들이 꼬물꼬물 몰려드는 이 학교에서 그 선택을 뒤집어 엎고 모험을 할만한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대입을 이유로, 거리상의 이유로, 혹은 종교를 이유로 우리 학교를 택한 사람들은 꽤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애들은 나름대로 본인의 선택에서 최선을 다하려 했던 것은 아닐지.
두 번 째로, 사립학교이긴 하지만 학비는 공립과 비슷했던 우리학교는 진성고처럼 돈이 많이 드는 학교가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도 형편이 어려웠던 학생들은 상당히 많았고, 대부분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 핸드폰이나 액세서리 같은 것을 챙길 여유가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애초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두발 자율화나 복장 완화 등에 신경을 쓸 틈이 없던 것이다. 소지품 검사를 해봤자 담배를 피울 돈도 없는 아이들이 허다한데- 화장품을 살 돈이 없는 애들이 허다한데- 그런 쪽의 문제가 일어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증거로, 우리학교의 국립대학교 진학률은 사립대 진학률에 맞먹는다. 특히 충남대와 충북대는 사랑받는 학교이다.
세 번 째로, 우리는 주제에 성적지향주의로 똘똘 뭉쳐있었다. 말하자면 [수능이 100일 남았는데, 지금 두발자율같은 소리가 나옵니까.]정도랄까.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애들이 대체 왜 그랬을까?-_-; 사실 이건 지방 학생들의 억한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비평준화에 연합고사에 배치고사를 봐봤자 어차피 서울 시내의 평준화 고등학교에 가느니만 못한 것이 우리의 실력이다. 거기에 변변한 과외선생님이나 학원도 없는데 하루 중 18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일이라도 해야 따라잡을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던 듯 하다. 지금도 동문들은 우리가 인터넷 강의로만 간신히 듣던 메*스터디나 비*에듀 등등을 대치동과 노량진에서 라이브로 들은 서울 아이들을 보면 신기해 한다.
이 쯤 되어 다시 말하는데, 나는 당시 뿌리깊은 어용 일가의 유일한 말썽쟁이였다. 그러나 단지 장난이었을 뿐, 본격적인 항쟁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내 그릇은 거기 까지였고, 내 열정은 거기 까지 였으니까. 당시엔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백안시한 경향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동영상을 만들어 돌린 학생의 용기에 감탄하고 행동력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역시나, 그런 운동이나 액션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졌을 때 나오는 결과라는 생각엔 변함 없다. 그런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우민이라고 칭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노코멘트. 누구나 본인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또한 착복비리라던가 야간담임 등 진성고 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았던 A고등학교의 실정이었기에 터닝포인트가 넘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닷 하다. 혹시나 해서 네이버 등지를 검색해보니, 진성고 동영상 같은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무리한 야자와 갖은 구습에 대한 항변은 여기저기 보이지만-_-;) 나는 그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건대, 십대 때 본인들이 했던 그 행동을 후일에 부끄러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 시절의 내 장난 투성이 말썽들을 생각하면 나는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지하게, 사려깊게 행동해야 한다는것. 그것만 갖춰져 있으면 행동해도 될것이다. 그대들은 젊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