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아직 VCR비디오테입들이 남아있다. 정작 재생기는 고장나서 쓸모없지만 고칠 생각도 않고있고, 이 남은 잔해들을 이사가면서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골머리가 탈 뿐이다. 한국어 더빙이 병맛나긴 하지만 그래도 꽤 좋아했던 여러 일본애니들과, 어렵게 용산에서 구해온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과, 내가 출연한 도전골든벨-_-과 기타등등...
이 와중에 발견한 02년도 인천방송과 ESPN 메이저리그 녹화분. 여전히 내 이상형인 최희섭은 시카고에서 차라리 투수를 해보는건 어떨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고 이제는 정말 사랑인지 미움인지 모를 텁텁한 감정만 남은 김선우는 빨간양말에서 딱.지.금.같.은.공 을 던지며 트레이드 혹은 강등에 떨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너에게 김선우 메이저리그 시절의 베스트 피칭은 무엇이냐."물었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그시절의 내가 되어 기억해보려 애썼다. 그리고 그 시절의 김선우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러나 허무하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고장난 저 VCR재생기처럼, 2002년의 김선우가 기억나지 않았다. 뭘 했더라 그 시절엔. 5이닝 1실점. 8이닝 무실점. 4이닝 6실점 3이닝 무실점. 5이닝 실점.... 꼬박꼬박 적혀있는 테입의 라벨들이 그때의 김선우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좋은 기록이 적힌 테입일수록 많이 돌려본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재생기가 없어 무용지물인 저 테입처럼 그가 던진 직구, 커브, 슬라이더... 그 어떤 공도 내 머릿속에선 재생되지 않았다. 허무하게도 말이다.
2002년의 여름. 한창 동안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울 그 때에 김선우는 보스턴을 떠나 몬트리올에 왔다. 우리학교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체육선생님은, 가뜩이나 여자애들이라 스포츠에 관심도 없는데 월드컵에만 빠져서 편향된 취향을 가질까 염려된다며 어디선가 비디오테입을 가져와 틀어주곤 했다. 애리조나의 김병현, 보스턴의 김선우. 두 젊은 투수의 경기가 담긴 테이프였다. 난 그날로 붉은악마들 틈새에서 빠져나와 바다건너 이국의 작은 공놀이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열두시까지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야자, 그리고 억지로 두시까지 졸린 눈 비비며 학교 독서실 닫을때까지 버티다가 집에 와서 틀었던 경기들. 정말 그때는 살이 절로 빠졌지. 그렇게 밤 샌뒤 보는 야구는 꿀맛이었다. 때마다 한국에 오는 유학생 사촌오빠들에게 메이저리그 경기는 어떠냐. 애리조나에 살면 김병현 경기는 잘 보느냐 캐묻고, 어린 마음에 [경기장에 갔다가 김병현이나 김선우 박찬호 서재응 등등을 보게 되면 꼭 싸인을 받아줘.]하고 기약없는 약속을 강요하기도 했다.
내가 어렸던 그때의 김선우는 그때나 지금이나 강하고 단단한 투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들유들하고 요령이 좋은 투수도 아니었다. 구대성과 서재응이 한 회에 안타 하나씩 주며 슬렁슬렁 맞춰잡기도 하고 삼진도 내고 하면서 꾸역꾸역 막는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김선우는 연속 삼진이나 범타처리로 잘 막다가 한순간에 몰아서 맞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야구를 하며 한밤중, 소리죽여 TV를 봐야했던 날 울리고 웃게 해주었다. 앞서 말했듯 강하고 단단한 투수는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그런 투수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김선우가 보스턴 입단을 하며 드높았던 자존심이 한풀씩 꺾이면서 그런 이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지만, 어차피 내가 아는 김선우 중에 보스턴의 김선우는 없다. 스물 한살 청년이 원대한 꿈을 안고 도전했던 그 이야기는 내가 아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아는 김선우는, 지금보다 젊고 기력이 넘쳤지만 지금처럼 불안하고 힘겹게 공을 던졌던 흰 유니폼의 내셔널리거였다.
나도 당신들에게 묻겠다. 당신에게 메이저리거 김선우의 최고의 피칭은 언제였는가?
지금 나에게 메이저리거 김선우의 기억은 무엇일까? 신시네티전 8이닝 무실점, 애틀랜타 3이닝 무실점, 애너하임 4이닝 6실점...... 이것뿐이다. 등판일자와 스코어보드를 적어놓은 라벨이 붙은 테입들. 내게 남은 메이저리거 김선우는 이 라벨 위의 숫자들 뿐이다. 김선우와 김병현의 비디오테입 꾸러미를 보며, 내가 저 테입꾸러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추억을 더 가져가야할지 그만 버려두고 가야할지 정해야할 것 같았다.
잠실경기장에서, 채태인의 타구에 정강이를 맞았을때 관중석에까지 타음이 들릴정도였다. 헌데 이 미친 투수는 아픈 티 하나 없이 던질 수 있다고 코칭스탭을 조르는 어이없는 장면을 보여주더라. 그날 정말 난 집에 쌓아둔 비디오 테입들이 생각나 미칠 지경이었다. 이인간아... 이인간아... 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아직도 흔들리고 있는거야. 투수는 네가 없어도 많고, 고참은 네가 없어도 누군가 있어. 삼진 잡지 않아도 안타를 맞아도 이길 수 있어.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거냐. 그리고 그따위로 쳐맞은 상황에 허세를 부리는거냐. 멱살을 잡고 묻고싶을 정도였다.
김선우. 당신을 영웅으로 보던 아이들이 선수가 되어있는 지금은 2009년이고, 여기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이다. 우리는 당신이 고생스럽게 미국생활을 마치고 온 걸 알고있고, 한국에 와서 좋은 경기를 해주길 바라고 있고, 믿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도 우리를 좀 믿어주길 바라. 당신의 자존심인 직구가 아니더라도 삼진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포수를 믿고, 바운드 치며 외야로 돌진하려는 공을 잡아줄 수 있는 내야수들을 믿고, 넘어갈듯 말듯 한 높은 공들을 뛰어가서 잡아줄 수 있는 외야수들을 믿고, 지고난 뒤 욕할지언정 내일은 다시 당신을 응원하는 팬들을 믿어주길 바란다. 제발.
다치지 말아줘. 그리고 오래오래 마운드에 서줘.
이 와중에 발견한 02년도 인천방송과 ESPN 메이저리그 녹화분. 여전히 내 이상형인 최희섭은 시카고에서 차라리 투수를 해보는건 어떨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고 이제는 정말 사랑인지 미움인지 모를 텁텁한 감정만 남은 김선우는 빨간양말에서 딱.지.금.같.은.공 을 던지며 트레이드 혹은 강등에 떨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너에게 김선우 메이저리그 시절의 베스트 피칭은 무엇이냐."물었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그시절의 내가 되어 기억해보려 애썼다. 그리고 그 시절의 김선우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러나 허무하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고장난 저 VCR재생기처럼, 2002년의 김선우가 기억나지 않았다. 뭘 했더라 그 시절엔. 5이닝 1실점. 8이닝 무실점. 4이닝 6실점 3이닝 무실점. 5이닝 실점.... 꼬박꼬박 적혀있는 테입의 라벨들이 그때의 김선우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좋은 기록이 적힌 테입일수록 많이 돌려본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재생기가 없어 무용지물인 저 테입처럼 그가 던진 직구, 커브, 슬라이더... 그 어떤 공도 내 머릿속에선 재생되지 않았다. 허무하게도 말이다.
2002년의 여름. 한창 동안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울 그 때에 김선우는 보스턴을 떠나 몬트리올에 왔다. 우리학교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체육선생님은, 가뜩이나 여자애들이라 스포츠에 관심도 없는데 월드컵에만 빠져서 편향된 취향을 가질까 염려된다며 어디선가 비디오테입을 가져와 틀어주곤 했다. 애리조나의 김병현, 보스턴의 김선우. 두 젊은 투수의 경기가 담긴 테이프였다. 난 그날로 붉은악마들 틈새에서 빠져나와 바다건너 이국의 작은 공놀이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열두시까지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야자, 그리고 억지로 두시까지 졸린 눈 비비며 학교 독서실 닫을때까지 버티다가 집에 와서 틀었던 경기들. 정말 그때는 살이 절로 빠졌지. 그렇게 밤 샌뒤 보는 야구는 꿀맛이었다. 때마다 한국에 오는 유학생 사촌오빠들에게 메이저리그 경기는 어떠냐. 애리조나에 살면 김병현 경기는 잘 보느냐 캐묻고, 어린 마음에 [경기장에 갔다가 김병현이나 김선우 박찬호 서재응 등등을 보게 되면 꼭 싸인을 받아줘.]하고 기약없는 약속을 강요하기도 했다.
내가 어렸던 그때의 김선우는 그때나 지금이나 강하고 단단한 투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들유들하고 요령이 좋은 투수도 아니었다. 구대성과 서재응이 한 회에 안타 하나씩 주며 슬렁슬렁 맞춰잡기도 하고 삼진도 내고 하면서 꾸역꾸역 막는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김선우는 연속 삼진이나 범타처리로 잘 막다가 한순간에 몰아서 맞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야구를 하며 한밤중, 소리죽여 TV를 봐야했던 날 울리고 웃게 해주었다. 앞서 말했듯 강하고 단단한 투수는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그런 투수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김선우가 보스턴 입단을 하며 드높았던 자존심이 한풀씩 꺾이면서 그런 이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지만, 어차피 내가 아는 김선우 중에 보스턴의 김선우는 없다. 스물 한살 청년이 원대한 꿈을 안고 도전했던 그 이야기는 내가 아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아는 김선우는, 지금보다 젊고 기력이 넘쳤지만 지금처럼 불안하고 힘겹게 공을 던졌던 흰 유니폼의 내셔널리거였다.
나도 당신들에게 묻겠다. 당신에게 메이저리거 김선우의 최고의 피칭은 언제였는가?
지금 나에게 메이저리거 김선우의 기억은 무엇일까? 신시네티전 8이닝 무실점, 애틀랜타 3이닝 무실점, 애너하임 4이닝 6실점...... 이것뿐이다. 등판일자와 스코어보드를 적어놓은 라벨이 붙은 테입들. 내게 남은 메이저리거 김선우는 이 라벨 위의 숫자들 뿐이다. 김선우와 김병현의 비디오테입 꾸러미를 보며, 내가 저 테입꾸러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추억을 더 가져가야할지 그만 버려두고 가야할지 정해야할 것 같았다.
잠실경기장에서, 채태인의 타구에 정강이를 맞았을때 관중석에까지 타음이 들릴정도였다. 헌데 이 미친 투수는 아픈 티 하나 없이 던질 수 있다고 코칭스탭을 조르는 어이없는 장면을 보여주더라. 그날 정말 난 집에 쌓아둔 비디오 테입들이 생각나 미칠 지경이었다. 이인간아... 이인간아... 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아직도 흔들리고 있는거야. 투수는 네가 없어도 많고, 고참은 네가 없어도 누군가 있어. 삼진 잡지 않아도 안타를 맞아도 이길 수 있어.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거냐. 그리고 그따위로 쳐맞은 상황에 허세를 부리는거냐. 멱살을 잡고 묻고싶을 정도였다.
김선우. 당신을 영웅으로 보던 아이들이 선수가 되어있는 지금은 2009년이고, 여기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이다. 우리는 당신이 고생스럽게 미국생활을 마치고 온 걸 알고있고, 한국에 와서 좋은 경기를 해주길 바라고 있고, 믿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도 우리를 좀 믿어주길 바라. 당신의 자존심인 직구가 아니더라도 삼진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포수를 믿고, 바운드 치며 외야로 돌진하려는 공을 잡아줄 수 있는 내야수들을 믿고, 넘어갈듯 말듯 한 높은 공들을 뛰어가서 잡아줄 수 있는 외야수들을 믿고, 지고난 뒤 욕할지언정 내일은 다시 당신을 응원하는 팬들을 믿어주길 바란다. 제발.
다치지 말아줘. 그리고 오래오래 마운드에 서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