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과 천주교가 너희들에게는 질 좋은 쇠고기냐?
나는 가톨릭신자다. 유치원과 고등학교를 천주교재단에서 나왔고 친가 전체가 4대째 예수쟁이짓을 하고있다. 그 배경에는 내 고향의 이야기가 조금 들어간다. 내 고향은 맛있는 포도가 나기로 유명하고 가톨릭의 성지도 있다. 랜드마크인 성당은 드라마에 자주나올정도로 예쁜 아주 오래된 건물을 가지고 있다. 뭐, 지역에 천주교 유산이 많기에 그 종교를 가졌다기 보다는 그 지역에 박힌 정서의 특징을 말하고 싶다.
오래 전, 조선땅에 천좍쟁이들이 설치고 나라에서 금하는 음험한 행위를 하며 제사도 거부하는 후레짓을 했더랬다. 그렇게 몰래몰래 믿겨지고 믿던 신앙이라는 녀석이 조금씩 뿌리가 박혔다. 그때의 물꼬를 텄던 사람들이 외방선교회 사제 인사들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 많은 사제들이 가난하고 좁은 동아의 반도를 찾았다. 더러는 잠시 머물다 떠나기도 했고, 더러는 지방의 풍토를 이기지 못하고 병과 싸우다 죽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은 '축복받았다.'라고 표현한) 소수의 사제들은 기반을 잡은 뒤 계속 포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 중 한명이 Fr. Gombert Antoine(한국명 공안국孔安國 신부)였다.
그는 소가 사는 집 같은 너절한 오두막들이 즐비한 허허벌판에 교단에서 돈을 공수받아 벽돌과 인부를 사서 성당을 지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자리 잡은 터는 바로 뒤에 향교와 관청이 있는 땅이었다. 관청에 대한 예로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는 곳 바로 아래에 건축을 한 벽안신부는 지역주민들에게 호된 손가락질과 팔매질을 받아야했다. 그러나 이미 구한말이 끝나고 일제가 지배하던 그 시절에 관청의 의미는 없었고 어렵지만 해야한다는 그 망할놈의 Mission을 가지고 끝까지 벽돌을 올려 완성했다. 예수를 모르는 촌민들은 처음에는 코쟁이 무당이 새로 만든 신당쯤으로 알고 아픈아이를 업고오고 굿판을 벌이려 했다. 그는 말리지 않았다. 아픈 아이가 오면 약을 먹여 돌려보내고 굿판이 일어날 때엔 그것이 무엇인지 소상히 묻고 굿을 물린 뒤 자신이 기도해주겠다고 말하여 되돌려보냈다.
수 년동안 이방인 성직자는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 수 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의 행색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제국군의 공풀로 초근목피해야했고 고기를 먹기위해선 집안의 전재산인 소를 잡아야했다. 신부는 고민하다가 프랑스 고향마을로 편지를 보냈다. 내 아버지의 농장에서 포도나무 몇그루를 보내달라고. 수번의 실패를 거쳐 어렵게 공수된 포도나무를 성당 안뜰에 심었다. 그렇게 심겨진 포도는 의외로 가지를 뻗어 잘 자라났다. 그날로 신부는 묘목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가엾은' 조선의 백성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의 사업을 하기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수 년을 더 그곳에서 보내고 전쟁은 극에 달했다. 공출은 배가 되었고 징집은 날로 늘었다. 동리의 의식있는 청년들이 모여 매일밤 모의하고 토론하여 일제를 물리칠 계획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랫동네인 천안 시장통에서 서울로 유학갔다던 깍쟁이 여학생이 만세를 불러 일파만파가 되었다. 동참을 약속하고 맨발로 달려가던 이곳의 청년들은 만세를 부르다 일본 군인에게 쫓기게 되었다. 그들은 어린시절 신학문을 배운 장소인 성당을 향해 도망쳤고 노소 장정을 합쳐 그 수가 천이 넘었다. 갑자기 아수라장이 된 성당 마당너머에선 경찰들이 씩씩대며 총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청년들 손에 들려있는 태극기를 본 신부는 황급히 자신의 숙소 옷장을 열었다. La Tricolore, 별로 꺼내본 일 없는 조국의 국기를 급히 꺼내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청년의 깃대를 빼앗아 태극기를 내리고 프랑스기를 달고선 한국어로 경찰들에게 외쳤다.
"프랑스와 전쟁을 할 참이냐? 이 성당마당은 나 프랑스인 곰베르트 안토니오의 땅이다. 나를 해치면 바로 프랑스와 바티칸에 전서가 갈것이다. 일본인은 프랑스와 가톨릭을 상대로 싸울생각이 있느냐?"
우물쭈물하던 경찰들은 곧 물러났다. 천여명의 남자들이 무사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프랑스 국민을 주창한 그 이후로 이방인 신부는 진짜 조선사람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고아원, 쉼터, 복지원. 모든 시설은 교회가 아닌 신과 빈민을 위해 지어야한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을 짓는다. 아픈 이들을 위해 요양원을 짓는다. 박해받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해 성당이 있다. 교구와, 더 멀리는 교단과, 가장 멀리는 신이란 빽이 있는 교회는 이것으로 Mission을 수행해야한다. 모든 일에 가장 늦게 반응하는 느릿한 종교단체지만, 그만큼 단단한 버팀목에 되어줄 의무도 있는 것이다.
몇년 전, 학교에서 학생회 주최 행사를 할 적에 명동성당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교정엔 금속노조 조끼를 입은 남자들이 활보하고 운동장엔 빈 막걸리병이며 피켓 등 쓰레기가 넘쳐났다. 난 분노해서 학교 게시판에 글을썼다. 우리에게 금속노조라는 단체를 지원할 의무가 없는데 어째서 이걸로 피해를 보아야하는가. 그러나 성당 안에서라면 그런 말을 못할 것 같다. 그곳은 신이 사는 곳이지 내가 주인행세를 할 곳이 아니지않는가. 신이 그들을 받아들이시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리.
"Matthew,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